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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오픈마이크
2024년 8월 15일,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
2024년 9월 9일
글 · 그림  |  강미미

오늘은 광복 79년이다. 길거리의 가로등에서 나풀대는 태극기들을 지나 옛 전남도청 앞으로 향한다. 억압 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1945년 8월과 1980년 5월. 이 땅은 79년 전에도, 44년 전에도, 어쩌면 오늘도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과거가 피워낸 오늘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보고, 그리고,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오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조금은 더 나아졌을 오늘의 모습을 지켜보며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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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오오 모여 걷다.
 
나도 이곳을 자주 걷는다. 금남로와 동명동을 오가며 친구를 만나거나, ACC 브런치 콘서트, 전시 등을 보며 이곳을 지난다. 이곳은 지금 목적지이기보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로 작용한다. 누구나 지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내가 이곳을 관찰한 오후 2시부터 4시에도 2시간 만에 3~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지났다.
 
8월 무더위에 양산을 들고 걷는 분들이 많았다. 손풍기를 들고 계시는 분, 부채를 들고 계시는 분도 보였다. 혼자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걸었다.
 
혼자 걷는 사람보다 삼삼오오 모여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빠, 정장을 입고 직장동료들과 걷는 사람들, 팔짱을 끼고 걷는 엄마와 딸, 느긋하게 걸어가는 노부부, 친구에게 장난을 치며 뒤로 걸어가는 학생들. 그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사람,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도 보였다.
 
어떤 사람이 이곳을 오고 가냐 묻는다면, 모든 사람이 이곳을 오고 간다고 답하겠다. 혼자여도 괜찮고, 함께여도 괜찮다. ‘광장’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그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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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너무 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옛 전남도청 맞은편 ‘민주의 종’ 그늘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광장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적게는 5명, 많게는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흩어졌다 모이며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손을 놓고 타는 아이, 허리를 잔뜩 숙이고 타는 아이, 픽시 자전거를 타고 뒤로 가는 아이, 핸드폰을 하며 타는 아이, 전동 킥보드를 타며 뒷바퀴로 일어서는 아이 등 아이들은 줄을 지어 광장의 분수대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전일빌딩으로 가자!’ 하며 이 부근을 크게 돌기도 하며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그러던 아이들은 그늘을 찾아 내가 있는 ‘민주의 종’으로 땀범벅이 되어 와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초등학생 5, 6학년쯤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을래?’, ‘신발 사러 갈래?’, ‘7시에 다시 만나.’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자전거를 타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빠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2시간의 관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오후 4시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전거 뒤에 작은 태극기를 달고 분수대를 돌던 6명의 아이들이었다. ‘광장’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 뜻은 내가 마지막으로 본 6인의 아이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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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모여 비가 되듯이.
올해 8월 광주는 오후 4시가 되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았다. 광복 79년인 오늘도 그랬다. 폭염 속에 구름이 모이고, 또 모이더니 땅을 뚫을 것만 같은 세찬 빗줄기로 쏟아졌다.
 
내가 광장에 있던 2시간 동안 이곳을 지나던 400여 명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 무시무시한 빗줄기에 맞서고 있을 것이다.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했듯이,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지 않을까?
 
각자의 방법으로 피해낼 폭우. 비를 쫄딱 맞을 수도, 우산을 쓸 수도,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할 수도 있다. 비를 피하지 못할지라도 비는 지나갈 것이다. 비가 내리는 동안 무엇을 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2024년 8월 15일, 오늘의 폭우에 맞서 이렇게 소소한 글과 그림을 나누는 것으로 나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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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그림  |  강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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