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이전글 다음글

INTERVIEW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오월이 되기 위해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김순 집행위원장님

2024년 9월 9일
에메올 독자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5월 광주에서는 정말 많은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열립니다. 광주 밖 타 지역은 물론 광주와 연대하고 있는 머나먼 외국에서도 다양한 5·18기념행사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국내외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유관기관과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이하 5·18행사위)"입니다. 5·18행사위에서는 전야행사를 비롯해 연구사업, 타지역·해외지원 및 연대사업, 오월정신의 계승·발전사업 등을 총괄하여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희 에.메.올 팀이  5·18행사위의 김순 집행위원장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 )
_DSC1621-편집.jpg
Q.  집행위원장님,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한번 부탁드립니다!

A. 제44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순입니다!😊

Q. 저희 에메올팀이 현장에서 청년분들을 만나보니 5·18행사위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현재 어떤 일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혹시 행사위의 역사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사실 1980년 이후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는 국가 전체의 분위기 자체가 어떤 추모행사도 제대로 하기가 쉽진 않았어요. 최초의 5·18전야제라고 불리는 행사도 1988년이 되어서야 구동체육관에서 진행되었죠. 1988년에 정권이 바뀌면서 광주 청문회가 열리잖아요. 그러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변화되고 광주의 진상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김영삼 정권으로 바뀌면서 다시 한번 분위기가 바뀌는데 "민주화운동의 성지"라는 광주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들에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993년에 오월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기념행사위원회"를 출범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5·18행사위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그렇다면 현재의 행사위가 가장 주요하게 수행하고 있는 역할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5월에 진행되는 민간 차원의 5·18 기념행사들을 주로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광주 외에도 전국구로 행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어요. 그런 곳들과 연대해서 5월에 의미 있는 행사들을 진행하고, 광주를 중심으로는 전야행사와 광역 단위의 오월행사들, 특히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념행사들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_DSC1549.jpg
_DSC1548.jpg
Q. 올해 44주년을 맞이한 5·18기념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들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가장 첫 번째는 오월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했어요. 작년에 5·18 공법단체와 특전사동지회가 열었던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공동선언을 비롯해서 각종 비리 사건 등 여러 혼란이 있었잖아요. 국민적 실망감이 컸었죠.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오월 당사자들과 유가족, 피로감을 느낀 광주시민들에게 신뢰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벌써 4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비경험세대, 미래세대라 부르는 이들이 5·18을 기념해야 할 세대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들에게 오월의 이야기를 잘 계승하고 전승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 기념행사의 주축이 될 40대들도 벌써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되거든요. 저도 50대지만 중학생 때 5·18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실 직접적인 경험세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지금 5·18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5·18을 사진, 영상, 글로 경험한 사람들인데 앞으로 완전히 잊힌 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세대를 위한 자리들이 많아지도록 한번 계기점을 찍는 어떤 과감한 변화들을 시도해야겠구나 이런 절박함이 있었어요. 그래야 오월정신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도 높이고 문턱이 낮은 오월 행사들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올해 5·18 행사가 좀 변화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라는 슬로건도 굉장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A. 좀 변화를 하고 싶었어요. 올해는 슬로건 공모를 할 때 이전과 달리 구호성보다는 대중적으로 문턱이 낮게 공감할 수 있는 부드러운 문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사 방향이 있었고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오월을 담아내고자 했어요. 그리고 요즘 세상이 위기 상황이잖아요. 사실 오월뿐만 아니라 기후, 경제, 정치, 지역 모든 것들이 쉽지 않은 위기의 세상인데 각자 너무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지만 오월의 정신이 이 시기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멈추지 않고 실천적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를 44주년 슬로건에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_DSC1628.jpg
Q. 그런 의미에서 올해 행사위에서 "청년기획사업"이 신설되었잖아요.
미래세대로의 전승을 위한 중요한 변화들을 시작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이전에도 행사위에서 지속적으로 청년들, 미래세대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있었어요.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예산의 배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어떤 사업들 속에 청년들이 일정 파트 참여하는 정도는 있었지만 온전히 어떤 기획과 공간을 맡기는 행사는 없었어요. 올해 5·18 기념행사의 전체 예산은 사실 작년에 비해 삭감되어서 정말 빠듯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청년사업에 가능한 선에서 최대의 예산을 배정했어요. 청년사업의 예산을 확보하고 청년들이 온전하게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사업을 시도해 보자 한 거죠. 다행히 행사위원장단이나 행사위의 여러 단체들에서 빠듯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런 취지에 함께 공감해 주셨어요. 올해는 시범적으로 시작했지만 내년에는 이 영역들을 점차 넓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간섭하지 말 것"이었어요. 올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청년들이 자기들의 노하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야 자기 것이 되니까요. 올해 잘 안된 건 내년에 안되면 또 내년에 이렇게 보완해 나가면 되는 거죠.

Q. 자기들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참 공감되는 것 같아요.

A. 이런 기회들을 통해서 우리가 모르는 청년 자원들이 밖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올해 참여했던 분들도 그 경험을 나누고 계속 이런 노하우들이 쌓일 수 있도록요. 행사위에서 올해 시민공모 사업으로 5월에 광주에 오는 것을 지원한 대학생들을 모두 지원했거든요. 대학생 한마당이 그래서 굉장히 멋지게 진행이 되었어요. 길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청년들이 이렇게나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구나 감탄을 했어요. 말하자면 그런 청년들에게 저희는 지금 투자를 하는 것이죠. 내년에는 전국에서 더 많은 대학생들이 5월에 광주에 와서 자신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도록 좀 더 지원을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픈공론장(826).jpg
Q.  저희 에메올팀도 현장에서 광주의 청년들을 만나보니, 여전히 많은 분들이 오월을 기억하기 위한 실천들을 이어가고 있었고 또 지금 세대에게 5·18이 잊혀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런 점이 참 뭉클했어요.


A. 저도 이번에 < 에브리씽, 메이, 올앳원스 > 청년기획사업 진행되는 것들 지켜보면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청년들이 다들 아닌 척, 새침한 척 있었지만 다들 마음속에 오월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주에서 교육받고 광주 곳곳에서 오월을 만나며 자라온 사람들이니까 더 그렇겠죠. 무겁고 회피하고 싶었을텐데 여전히 마음 속에 오월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품고 있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이제 이 마음들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우리가 잘 만들면 될 것 같아요.

Q. 44주년 행사의 기조에 "다양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명(共鳴)"이라는 문장도 인상 깊었습니다. 오월 행사에 다양성이 좀 더 반영되면 좋겠다는 그동안의 의견들이 수렴된 결과인가요?

A. 맞아요. 앞으로는 행사위에 장애인단체나 인권단체 등 참가단체의 폭을 더 넓혀 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여성, 퀴어,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행사위가 되어야겠다는 논의를 저희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5·18의 정신과 가치는 인권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 바탕이 되는 것인데 이런 경계들을 허물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공명"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하면 "울림"이거든요.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고 이렇게나 서로가 다양하구나 그 울림을 느끼는 것,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 이런 소망을 담은 문장인 것 같습니다. 
김순집장님_픽사진.jpg
Q. 그러고보니...!! 김순 집장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이런 활동들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A. 사실 학번으로 따지면 전 서태지세대예요. 당시엔 저희가 지금의 MZ세대 같은 느낌이었죠. 안 믿기기죠?😎 89년도에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조선대학교 이철규 열사의 사인 진상 규명을 위한 선전을 보게 되었어요. 이철규 열사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그 사진이 정말 처참해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학교에 차려진 이철규 열사의 분향소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저는 그분의 얼굴을 처음 보았어요. 너무 반듯하게 잘 생긴 청년이었어요. 제가 본 사진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죠. 내가 본 것은 처참한 시체 사진이었는데 이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계기들로 자연스럽게 인권운동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한 활동들을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45주년,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5·18 행사에 개인적인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A. 제 마지막 소원은 박제된 역사로 남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 곁에 살아있는 역사로서의 오월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청년분들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함께 힘 모아봐요. 전일빌딩에 있는 행사위 사무실도 자주 놀러 오시구요😊

(마침)



인터뷰 진행일 : 2024년 8월 9일
에디터 : 김꽃비

구독.jpg
제보.jpg
피드백.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