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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무한 텍스트"로서의 오월
수많은 언어가 발화하려면
2024년 8월 12일
7월 31일 "스페이스 디디에프(구 산수싸리)"에서 여섯 번째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열렸습니다. 이번 작소공에는 임의현 기획자님과 함께 < 영화 >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영화를 소재로 한 공론장이었던 만큼, 할 말도 들을 이야기도 참 많았던 시간이었어요! 그날의 소란한 이야기들 지금 바로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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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택시운전사 >, < 화려한휴가 > 같은
5·18을 다룬 대중상업영화가 흥행한 이유?
"소재 대비 캐스팅 덕분이다"
캐스팅의 효과가 큰 경우라 생각한다. 소재 대비 캐스팅이 좋았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게 했고 좋은 만듦새가 따라주었기 때문이랄까. 그게 아니라면 흥행을 위해서는 결국 스토리가 좋아야 될 것 같다. 일반 시민의 이야기와 관점일수록 보편성을 가지고 볼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
5·18을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언제든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고 이것이 흥행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책이나 교육과정 속에서 5·18을 배울 때 사실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배우고 듣는 것처럼 그냥 옛날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런데 영화에는 스토리가 있고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그런지 내 자신과 연결이 잘된다. 

"윗 세대분들의 궁금감"
운동권 세대의 정치, 문화적 에너지가 힘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그분들의 기억을 통해 가치로서 보전된다. 운동권 세대나 저희 부모님 세대는 5·18 관련한 영화 혹은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나오면 '우리가 봐야지' 이런 의무감 같은 게 있으신 것 같다. 예를 들면 < 서울의 봄 > 같은 영화가 나왔을 때도 부모님이 '그 영화는 가서 봐줘야지, 언제 극장에 좀 데려가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 택시운전사 >나 < 1987 > 등 이런 류의 영화가 나오면 윗세대분들이 입소문을 내시며 흥행 분위기를 만드시는 것 같다. 이런 게 오월을 다룬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똑같은 역사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미 현대 사회 속 많은 이들이 역사를 잊고 살아가지만, 영화라는 매개체로 하여금 다시 떠올리고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의 고통에 동감할 수 있게 한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통한 의무감, 부채감 등을 해소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이게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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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월 영화를 보기 힘든 이유
"행복한 일상이고 싶다"
일상에서는 행복하고 싶은데 오월 영화를 보면 슬프고 힘든 감정이 들어 보기가 어렵다. 비슷한 다른 영화들도 그렇다. 사회적 참사와 아픔, 사실로서 알아야 되는 내용들이지만 마음이 힘들어질 까봐 선뜻 보지 않게 된다.

"잘 구현된 슬픔과 고통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할 때도 있다. 계속 회자는 되는데 얼마나 잘 만들어졌을지 이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소재에 대한 내용도 이미 알고 이걸 연기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했을지 알기 때문에 무서워서 뚜껑을 열지 않는 달까. 이미 이게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울지 전작이나 다른 관련 작품들에서 경험해 봤기 때문에 굳이 또 한 번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에 오월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된다.

"빚지는 마음을 들게 해서"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딱 이런 것 같다. 이걸 보면 마음에 빚을 지는 것 같아 보기 힘들다. 피해자를 내세우며 아픔과 슬픈 감정들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오월 영화들처럼 피해자의 아픔만을 내세우지 않고 그걸 다르게 표현하는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터넷과 SNS에 오월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할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광주 사람이라서 보기 힘들다"
광주 사람이기 때문에 오월 영화를 제대로 못 보게 되는 것 같다. 이건 교육과정 탓이라고 생각한다. 세대마다 다르겠지만 초등학교 당시 5·18 국립묘지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시관에 실제 피를 흘리거나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들을 아무 필터 없이 보게 됐고, 5·18 때마다 정제되지 않은 실제 영상을 시청하게 했다. 거의 10년을 보게 되니 무서움이라던가 죄의식이 생겨 5·18에 트라우마가 생겨 영화를 보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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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영화란 무엇일까?
보고 싶은 광주 영화
"광주 지역을 근거지로 한 영화"
광주 지역을 근거지로 한 영화가 광주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상업과 독립영화를 나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자본이나 기술, 인력 등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만 지역에는 그런 게 없다. 지역에서 만든 영화는 대부분 독립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은 독립 영화가 아니라 무소속 영화라고 쓴다. 광주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치면 독립 영화이면서 로컬 영화의 이중고를 겪는다고 생각되는데, 그중 민중항쟁을 다룬 영화라 해서 다 광주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광주 사람이 만들지 않은 광주 영화"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 < 존 오브 인터레스트 >가 있는데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이지만 기존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여타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을 보여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독특하고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앞으로는 이런 오월영화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광주 사람이 만들지 않은 광주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선들이 더 투입되면 접근하기도 더 쉬워질 것 같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광주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10년, 20년 뒤에는 오히려 더 좋은 광주영화가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5·18이란 개념을 다루지 않은 광주 영화"
5·18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다루지 않는 광주영화가 한 번 나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광주영화는 독특한 개념화가 돼있지 않은가. 부산영화, 서울영화라고 얘기할 때 광주 영화처럼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적인 느낌이 확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광주영화에도 이런 개념들을 떠올리지 않는 콘텐츠로 제작됐으면 싶다. 대신 광주라는 지역을 다루고 사투리가 나오는 평범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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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언어들이 발화하고
더 좋은 오월 영화들이 만들어지려면?
"무한텍스트로서의 5·18"
문학과 지성사에서 2020년 출판된 도서 < 무한텍스트로서의 5·18 >(김형중, 이광호 엮음)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5·18은 국가권력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강렬한 사건으로 그 의미와 작업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지난 40년간 5·18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드러내야 할 사실의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5·18은 이제 사실의 영역을 넘어 고유하고 개별적인 '진실'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중략) 우리가 5·18을 '무한텍스트'라고 명명하는 것 역시, 5·18이 하나의 이름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한히 열린'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5·18을 둘러싼 완전하고 올바른 역사는 없으며, 5·18에 대한 새로운 언어들이 끊임없이 발명되어야 한다."1)

"인정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5·18을 주제로 한 더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정'이 첫 시작인 것 같다. 하나마나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5·18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때 '완전하고 올바른 역사를 모두 영화에 담아낼 순 없을 것이다'라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오월의 무한텍스트를 쓸 수 있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의무감, 사명감, 잘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감, '사실을 완벽하게 담아내면서', '재미도 있어야 하고', '의미까지 잘 담아야 한다는' 목표들이 사실은 깨져야 된다. 이게 깨져야 영화든 글이든 무한의 가능성으로 갈 수 있다. 

"새롭기 위해, 크고 넓게 보는 시선이 필요"
무한텍스트를 계속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좌우의 시선이나 찬반을 논하는 시선은 아니다. 5·18 안에서도 다양한 시선과 키워드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좁게 생각하기보다 앞으로는 좀 더 큰 카테고리들로 접근해 보면 좋겠다. 그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5·18 광주영화로 나아갈 수 있겠다 싶다. 돌이켜보니 5·18 영화를 보지 않았던 이유가 떠올랐다. 영화 한 편으로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무한텍스트로서 새로운 시선과 콘텐츠가 생겨난다면 발걸음을 가벼이 영화관으로 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구성"
이번 광주독립영화제에서 < 디데이 프라이데이 >라는 단편 영화가 있었다. 내용은 84년 광주에서 고등학교 야구선수를 좋아하는 여학생의 이야기로, 고교 야구대회를 보러 가고 싶은데 그날이 하필 5·18 때 돌아가신 이모부의 제삿날이라 못 가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5·18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신 이이다 감독님은 97년생이신데 첫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여러 현대사 중에 5·18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광주와 어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앞으로는 오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광주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알리고, 혹은 어떤 부채감을 씻어내는 의미가 있었다면 이제는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소재로서 선택되는 시대가 점점 오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월 영화를 잘 만든다'는 것에 정답 공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5·18 잘 알아야 되거나, 광주와 연이 있어야 광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틀을 깨부수어야 결국은 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한편으로 쏠리지 않은 관점으로"
모양이 뾰족한 것도 있고, 둥그런 것도 있고, 네모난 것, 독한 냄새가 나는 것 등등 사람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매번 비슷해 보이면 새로운 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양한 것에서 새로운 대화와 영감이 생겨나지 뾰족한 것만 향해 간다면 뾰족한 걸 싫어하는 사람만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한텍스트로서의 오월 영화에는 다양한 제작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한한 재해석에도 경계는 필요하다"
다만 무한텍스트로서의 오월이 결코 왜곡과 폄훼를 만드는 세력들에게 어떤 단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해석만큼이나 사실로서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경계를 지혜롭게 잘 지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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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한마디]
돌아보니 지난 여섯 번의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우리의 오월 이야기에 다채로운 시선과 언어, 표현하는 방법 등을 차근히 생각하고 연습할 시간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관점에서의 다양한 표현이 공존해야만 명확하고 선명한 5·18을 미래에도 전달할 수 있겠다고 깨닫게 됐어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는 이야기해 나가야만 한다고요. 오월을 "끝나지 않은 엔딩 크레딧"이라 표현한 것처럼 올바른 끝맺음을 하기 전, 역사를 기억할 방법으로 과거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언어를 잘 섞어보아야 하겠습니다. 


(마침)
[각주] 
1) 김형중, 이광호 엮음 < 무한텍스트로서의 5·18 > (문학과 지성사, 2020)
본 아티클은 현장에서 나눠진 이야기들과 행사 후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남겨주신 소감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7월 31일 수요일 스페이스 디디에프(구 산수싸리)에서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 최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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