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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나에게로 떠나는 "기록여행"
무엇이 우리를 기억하고 기록하게 만드는가?
2024년 7월 29일
7월 17일 독립서점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이서점)"에서 다섯 번째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열렸습니다. 이서점의 한채원, 박수민 대표님과 함께 < 연결감, 기억, 기록 >이라는 키워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그날의 소란한 이야기들 지금 바로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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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은 왜 중요할까요?

"기록에서 발견한 연대의 순간"
2년 전 4월 16일에 세월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초반에는 세월호 관련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구 지하철 참사나 씨랜드 화재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고 후반부에 세월호 사고가 다뤄졌다. 사건의 원인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 국가적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광주에 왔을 때 오월 어머니들이 그들을 끌어안고 위로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강력한 연결이 생겼다고 느꼈다. 두 참사의 희생자들이 만남을 통해 고통을 회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빌었다. "기록"은 단순히 텍스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 사건을 끌어내 공론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좀 더 관심을 갖고, 관련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응원했더라면 어땠을까? 남겨진 기록들은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져 잠든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5·18과 같은 사건들을 잊지 않도록 돕고 남겨진 사람들이 강력하게 연결되고, 연락할 수 있게 만든다. 기록은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요소다.
 
"목격자들이 저마다 남긴 이야기"
KBS의 다큐멘터리 < 로숑과 쇼벨 >을 보면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두 명의 프랑스인 보도사진 기자들이 나온다. 취재과정에서 이들이 당시 광주에서 찍었던 미공개 사진들이 공개되었는데 80년 당시 계엄군에 의해 실종된 아동들의 단서가 담긴 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조영운"씨가 찍힌 사진 1장은 44년 만에 그가 5·18 당시 광주에서 실종된 아동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목격자들이 찍은 1장의 사진이 결국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기록의 힘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록은 직접 작성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읽고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는 행위 자체도 나에게 남기는 기록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록은 이야기를 보존하는 방법"
광주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감정과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광주에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강렬하고, 비경험 세대도 책이나 학습을 통해 5·18을 접하면서 그 감정을 느낀다. 개인적인 경험이 5·18과 연결되기도 한다. 5·18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5·18과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서점에 있는 책들은 기록의 한 형태로 소리는 없지만 사람들이 찾아 읽으면 그 중요성이 드러난다. 기록은 읽고 공유되면서 계속 돌고 돌아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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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스스로 해석하고 기억하는 광주의 오월


"자긍심을 가질만한 광주의 오월"
5·18민주화운동은 고통스럽지만 자긍심을 가질 만한 사건이라고 스스로 해석하고 있다. 광주에 살면서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만약 이 사건이 단순하고 완결된 것이었다면 더 이상 5·18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과 진상규명의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잊지 않고 기억해 가야 하는 사실로 인지하고 있다.

"군대에서의 기억"
광주의 5월은 민주화운동으로 교육받아 왔다. 군대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들에게 5·18은 가볍게 소비되는 주제였다.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쉽게 일종의 희화화가 되었다. 광주에서는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 보면 청년들에게 5·18의 의미가 변질되어 조롱거리가 될까 걱정된다. 더욱 다양한 방면으로 목소리를 내어 5·18의 가치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던 도시"
대구에서 코로나 슈퍼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광주의 의료진이 제일 먼저 지원을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소외받고 차별받는 것에 대한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 돌려줄 수 있는 애정과 위안의 표현이었다. 광주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저항정신을 말하는 깨시민들이 사는 곳"
광주는 저항정신이 살아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외부로부터 핍박받아온 경험 때문인지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다. 5·18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이 활약했던 것도 그렇다. 또 광주에 살면 "깨시민"인척 한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런 환경들이 사람들을 깨워주는 것 같다. 5월의 사람들, 거리, 그리고 매년 광장에서 볼 수 있는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들 덕분에 잠깐이라도 보고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말도 조심하게 되고 그런 변화가 개인적으로는 참 좋다. 삶을 쉽게 건조하게 살지 않고 자꾸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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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주와 연결감을 느낀 순간들

"전야제에서 느낀 연결감"
5·18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전야제 행사였다. 세월호 사건 직후 희생자 가족들의 연대가 이곳저곳에서 거부당하고 집회를 방해받던 시기가 있었다. 5월에 그분들이 광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전야제에서 광주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의 방해가 있을까봐 내용을 오픈하지 않고 비밀리에 준비했던 것이다. 전야제가 시작되자 무대에서 세월호를 인양하는 퍼포먼스가 시작되고 예술인들이 급히 만들었던 세월호 모형이 시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무대까지 나아갔다. 시민들이 배 모형을 무대 위로 올리며 유족분들과 "세월호 진상규명!"을 함께 외쳤는데, 그때 5월 광주가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과 연대를 나누는 곳임을 깨달았다.  
 
"안부를 묻는 도시"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 도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광주가 갖는 특별함과 애잔함을 깊이 느끼곤 하는데, 도시와 나 사이에도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는듯 하다. 광주는 다른 도시나 사건들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부족한 점도 많지만 항상 뭔가를 해보려 노력하는 도시구나 감동을 받았다. 또 "오월 정신", "광주 정신"을 말하며 완결성을 추구하는 도시라고 느껴진다. 다른 도시들처럼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그 이름 앞뒤로 '정신'이라는 단어가 붙어 특별한 의미를 만든다.  그래서 광주에서는 하나라도 뭔가 잘못하면 "광주는 이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는 대구나 부산 같은 다른 도시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부분이다. 왜 광주가 이런 특별한 의미와 요구를 받는지 오늘 공론장을 통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연결감을 좀 더 넓혀가자"
광주에 살면서 아직 전야제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전야제"라는 그 문화 안에서 어떤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광주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지 못했던 상황 등 앞선 사례들을 살펴보면 "선택적 연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연대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는 그 폭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지만 이 연결감을 어떻게 좀 더 넓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오지랖, 그 양면성에 대하여" 
광주는 오지랖이 넓은 도시이기 때문에 관계성에 집착하는 도시로 느껴질 수도 있다. "저 사람이 불편해할 거야"보다는 "저 사람, 뭔가 어려운 게 있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간섭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다정함일 수 있는 오지랖이 넘쳐나는 도시가 광주라고 느껴진다. 오지랖이 연결감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버거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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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기록이 만들어주는 접촉"
처음에는 여기서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다들 배우 같고, 세트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청년들이 이런 장소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아름답고 낯설면서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12년 전부터 5·18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 시민군 생존자, 고문당한 분들의 증언을 기록해 왔다. 트라우마센터에 가면 이 분들의 증언집도 볼 수 있다. 오늘 현장에서 나온 키워드들은 스스로도 오랜 시간 씨름해 왔던 것들이라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분들이 왔을까 싶다. 광주 사람들에게는 5·18을 "모른다"는 것이 상처다. 80년 5월에도 언론이 통제되고 정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은 것이다. 그때 거리에 나갔던 사람들이라도 살아남은 것에 대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고통에 위계가 있을 수 없지만 자꾸만 당사자성이 강조되며 고통의 위계를 짓는 것은 상처가 낫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퀴어 축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신을 믿는 사람들과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충돌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충돌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열어갈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을 다루고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느낀 점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야기를 들으면 접촉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접촉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마을을 열게 된다. 사람들은 동등한 관계에서 증오를 털어내고 이야기를 통해 충돌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이런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들의 기록이 중요하다. "라이프 에프터 헤이트"라는 단체도 소개하고 싶다. 
 
"삶의 태도를 연습하는 것"
요즘 설경구, 김희애가 나오는 < 돌풍 >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설경구가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어. 거짓은 더 큰 거짓으로 이길 수 있어"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걸 듣고 맞는 말이지만 광주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광주의 5월 정신은 단순한 이념이나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는 삶의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약 2년 전에 조선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채용비리와 관련한 큰 이슈가 있었다. 당시 문화예술계에서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청년들과 함께 피해자가 발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해당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2년간 힘겹게 싸웠다. 결국 법원이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도 제정되고 조례가 최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법과 조례가 형식만 갖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광주가 인권도시로서 보여주는 따뜻한 모습들도 있지만 모순되는 지점들도 많다. 광주의 5월 정신을 성역화하지 말고, 기록과 기억을 통해 꾸준히 배우고 우리 스스로의 생각과 고민들을 발언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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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한마디]

참가자분들의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광주라는 도시에 살다 보면 삶의 로그(log)에 나도 모르는 순간 "5·18"이 자꾸만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커다란 기억저장매체로 본다면 모두들 어디선가 읽고, 보고, 듣고, 만나며 조금씩 쌓아온 기록과 기억의 데이터를 조각 모음 하다가 결국 이런 < 작고 소란한 공론장 >에서까지 만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이 날 공론장에서의 2시간이 모든 분들의 기억 속에 의미 있는 시간으로 저장되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 )

(마침)

본 아티클은 현장에서 나눠진 이야기들과 행사 후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남겨주신 소감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7월 17일 수요일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에서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 김꽃비, 이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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