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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각자도생의 시대
공동체- 힘일까? 짐일까?
2024년 7월 1일
6월 19일 청춘발산마을에 위치한 청춘빌리지에서 세 번째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열렸습니다. 3회 호스트로 함께해 주신 청춘발산협동조합 송명은 대표님께서는 발산마을의 오래된 역사부터 청년들이 정착해 뿌리를 내리기까지 과정들을 진솔하게 들려주셨는데요. 특히 이날은 발산마을의 사례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어요. 그날의 소란한 이야기들, 지금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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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우리를 "공동체적" 사람으로 만드는가?

여러분은 "공동체"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신가요? 두렵고 불안할 때 서로를 지지해 주는 안전지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집단 이기주의, 혹은 오지랖으로 여겨지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발산마을의 사례는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이 두렵고 불안할 때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공동체와 연대를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끼게 했는데요. 5·18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주먹밥정신"을 통해서도 우리는 80년 5월 광주가 보여줬던 위대한 공동체의식에 대해 자주 들어왔잖아요? 이번 공론장에서는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이 해석하는 공동체는 과연 무엇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이야기 같은걸
발산마을 사례가 나에게는 < 응답하라1988 > 같은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뉴스나 거리에서 접하는 현실과는 사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공동체와 이웃의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낯설다. 이웃에 대한 돌봄이라는 것을 거의 접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발산마을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닐지
이제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도 어릴 때 발산마을 같은 공동체 속에서 자라왔다.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봐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이 유토피아처럼 느껴질 정도다. 개인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도 관심이 많은데 부수고 새로운 것을 짓고 하는 게 너무 쉽게 진행되는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재생은 결국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 가능하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발산마을의 이 공동체 속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긍정적인 경험의 중요성
어렸을 때부터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인 융화, 혹은 거부감을 갖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릴적 복도형 아파트에 살았는데 이웃들끼리 항상 음식도 나눠먹고 서로 모여서 놀고 했던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다. 공동체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없다면 갑자기 공동체 안에 녹아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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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동체정신에 대한 불신과 오해

오지랖일 때도 많잖아...
솔직히 공동체 정신이라고 하면 좋게 말하면 "정"이고 다르게 말하면 "오지랖"이라고 느껴진다. 친척끼리 모이면 요즘 뭐 하냐, 취직 안 하냐부터 시작해서 안물어봤으면 좋겠는 질문 세례가 이어진다. 청년들이 공동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는 발산마을 사례처럼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도움을 받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오지랖으로만 느낀 경험이 많은 것이다.

개성의 표현으로서의 개인주의
한국은 유교사회에서 비롯된 공동체 정신이 강해서 하나의 목적, 하나의 집단을 위한 공동체에 대한 강요가 불신을 만드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진짜 공동체 정신이라고 느낀 것은 "나랑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도 멋있는 사람이고, 나도 멋있는 사람이고 우리에겐 이런 장점과 단점이 있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공동체 속에서 개인에 대한 포용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성의 표현으로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하나로 묶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너무 멀면 춥고 너무 붙으면 덥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사람도 있는데 "안 붙을 거면 절로 가!"하는 극단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5·18전야제에 갔을 때도 어떤 사람은 거리에 모인 공동체와 연대의 힘에 감동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로만 묶여야 할 것 같은 이 분위기가 무섭다고도 말한다.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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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자도생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
오월의 공동체정신에 얼만큼 공감할까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5·18 당시 시민들이 보여줬던 위대한 시민의식과 공동체 의식은 "1인분의 삶"도 해내기가 벅찬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청년들의 감성으로 솔직히 믿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80년 5월 고립 당시 시민들이 함께 만든 공동체 속 단 한 건의 강도사건도, 약탈도, 폭력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장면인 것이다. "진짜? 없었을까? 그게 가능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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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사회적 자본이다
범죄 없는 마을은 CCTV가 많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돌봐줄 수 있는 이웃이 있는 곳이다. 공동체는 곧 사회적 자본이다. 누구나 자기가 경험하고 본 것만 믿으려고 한다. 청년들이 그 문장에 의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공동체에도 부정적인 면들이 많다. 집단이기주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힘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발산마을 사례도 그렇고 이상적인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해 계속 싸워나가는 것이다.
존중받고 싶은 만큼 존중하기
발산마을에서 일하고 살면서 느낀 점은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지?"라는 것이다. 갈등을 조율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서로를 챙겨주고 이해하려는 노력 사이에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혐오는 쉬운 방법이다. 공동체에서는 존중받고 싶다면 나도 그만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공동체에서 배운 것들과 받은 힘을 알기에 청년들에게 더 알리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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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데 말입니다...

이날 현장에서 5·18을 숫자로 표기할 때 점을 온점(마침표)으로 써야 하는가, 중점으로 써야 하는가 논쟁이 있었어요. 사실 이 표기법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청년분들도 많으셨는데요.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논쟁이라 이 내용도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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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법에 대한 이야기
발제 자료에 "5.18"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걸 "5·18"로 표기해 줬으면 좋겠다. 점의 위치에 따라서 전혀 의미가 달라진다. 기자들도 다들 "5.18"로 표기하곤 하는데 틀린 표기법이다. 온점(마침표) 써서 표기한 5.18은 날짜로서의 개념이지만 중점을 써서 표기한 5·18은 우리가 말하는 항쟁으로서의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고유명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 가운뎃점인지 설명해 줬으면
5·18을 주제로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이 "점"에 대한 교정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근데 정작 왜 가운뎃점을 써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냥 아랫점을 쓰면 틀렸으니 고치라는 식이었다. PC보다 모바일폰으로 타자를 치는 게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가운뎃점 쓰는 건 자판에서 찾기가 어려워 불편함도 크고 검색에 용이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5.18"로 표기되어 유통되기 때문에 "5·18"로 검색하면 누락되는 중요한 자료가 많아 안타까웠다.

오잉!!! 처음 알았어!
표기법에서 "5·18"과 "5.18"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작은 점 하나에도 의미가 달라진다니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들 중 날짜로 표기되는 다른 사례들을 봤을 때 가운데 점이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표기법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표기법에 대한 여러 의견을 공론장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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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를 지지해주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 산다는 것

내 삶에 확신을 주는 사람들 
발산마을에 있으면서 돈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마을공동체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벌긴 어렵다. 20만원, 30만원 벌 때도 있었다. 근데 그 돈으로 이웃들과 맥주 사 먹으면서 그랬다. "야~ 이렇게도 살아진다. 근데 너무 행복하다~"고 말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지지해 주고 나의 가치관에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의 삶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인생 선배들이 있다. 나보다 몇십 년을 더 사신 인생 선배들을 곁에 두면 이런저런 복잡한 고민들도 단순하게 해결된다. "잘 해결될 거야"라는 그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소통을 배우는 공동체
요즘 20대를 "알고리즘 세대"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만 만나게 되고 관심이 없는 분야에는 전혀 교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살을 부딪히며 배우는 것은 결국 대화를 통한 소통이 아닐까. 최근 헬스장에서 "노아줌마존"이라며 무례한 손님의 행동을 저격한 일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샤워실에서 어떤 아줌마가 나에게 몸매 평가를 한다면 당당하게 "오~아줌마 몸매도 멋져요!"라고 받아칠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오늘처럼 이런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 공동체가 많이 생긴다면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는 것
개인적인 고백이라 조심스럽지만 흔히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퀴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자리에서 밝히고 싶다.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처음인데 발산마을 사례를 통해서 던져주신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곳에서 도망갈 곳이 필요하거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용기 내서 이야기해 본다.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공동체를 만나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서로를 돌보고 지지해 주는 동료와 이웃이 있는 발산마을 사례를 통해 오늘 위로를 많이 받은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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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한마디]

'청춘'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으로 빛날까.
청춘발산마을이 이토록 오랜 기간 따뜻하게 빛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요? 서로를 돕고 챙기며 지지해 주는 이웃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각자도생의 시대, 청년들에게 어렵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공동체 정신을 나와 내 옆의 가까운 이웃에게 보내는 따뜻한 관심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이 희생이 아닌 나를 위한 투자라는 것도요!

(마침)

본 아티클은 현장에서 나눠진 이야기들과 행사 후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남겨주신 소감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6월 19일 수요일 청춘발산마을에서 진행된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 김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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