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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불편한 이야기도 할 수 있는게 광주아닌가요?
연대가 또 다른 차별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2024년 6월 17일
6월 5일 광주 최초 여성지향 어덜트토이샵 세컨드웨이(Second way)에서 두 번째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열렸습니다. 이날 공론장의 호스트를 맡아주신 장윤선 대표님은 한국사회에서 매번 "불편한 이야기"로만 치부되는 성(性)에 대해 안전하고 당당하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해요. 아담한 공간이 참여자분들의 열기로 금세 후끈해 질정도로 이날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불편한 이야기, 왕창! 나눠봤습니다. 지금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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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들 오늘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오셨죠?

"광주 최초의 여성지향 어덜트토이샵" 
혹시라도 이번 공론장에 오는 것을 어렵고 불편하실까 봐 열심히 포장해서 홍보했습니다. 이제 숨기지 않고 말해볼게요. 세컨드웨이는 쉽게 말하면 "섹스토이"를 파는 성인용품점입니다. 무슨 그런 불경한 곳에서 5·18을 이야기해?라고 생각하셨나요? 하지만 우리는 진지했습니다. 5·18의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서사 중 하나인 "황금동 여성들"에 대한 재조명과, 아픈 역사이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에 대한 이야기까지 무거운 주제들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자신도 모르게 가진 편견들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차별에 대해서도요. 

현장에 오신 분들 대부분 이렇게 밝고, 깔끔하고, 그냥 가게 같은?!? 성인용품샵도 있다며 놀라워하셨어요.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오늘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는지 말이죠. 그래서 일단은 왜 오셨는지 물었습니다.


궁금했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5·18을 이야기하는데 성인용품점에서?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묻고 싶었다. 세컨드웨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다루기 쉬운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새롭게 느껴졌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 왔다.


색다른 기회가 된 것 같아
오늘 호스트이신 대표님의 발제를 듣고 나니 성인용품점을 향한 편견들에 당당하게 잘 버틴 것 같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무슨 주제로 이야기할지 상상이 안 됐다. 한국사회가 유교사회다 보니 성(性)과 관련된 문제들에 암묵적으로 억압이 있는 것 같고, 가부장제도, 국가폭력 같은 것들도 억압과 연결돼있다.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어지는 맥락이 있는 것 같아서 5·18을 주제로 색다르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약간의 편견이 있었을지도...?
성인용품점에 대한 일종의 이미지가 있었다. 와서 보니까 가게가 밝고, 제품도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것 같다. 대표님도 예상한 이미지와 다르게 유쾌하셨다. 나도 모르게 성인용품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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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성(性)
광주는 과연 진보적인 도시?

본능적인 것인데 터부시되는 현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중 하나가 성(性)에 대한 것이다. 성별도 나이도 관계없이 말이다. 근데 솔직히 여자로서 성적인 이야기하는 것이 항상 두려움이 있다. 여자가 성적인 대화를 좋아하면 여전히 "밝히는 애", "더러워" 이런 소리를 듣는다. 미디어에서도 남자분들은 거침없이 이야기하는데 여자분들은 그러기 쉽지 않다. 섹스에 대한 관심은 근원적인 궁금함이고 인생의 즐거움이다. 이 자리에 와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느껴져 위로를 받았다.

꺼려지고 불편하다
친구들과 성적인 대화를 나눠보려고 시도하면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욱 그렇다. 충격적인 점은 성인이 된 여자친구들이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 주체성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너무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음지에서만 다뤄진다. 불편한 이야기들도 해보는 게 필요하다.

진보적이라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보수적인 도시
바깥에서 보면 광주는 진보적인 도시처럼 보이지만 살아보면 정말 보수적인 도시다. 솔직히 무조건 지지하는 하나의 정당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개개인은 성향마다 다른 점이 있겠지만 광주라는 도시의 성(性)에 대한 감수성은 정말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퀴어축제"가 진행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프로그램이나 공간도 적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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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동 여성들"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생전 처음 듣는 518의 이야기 
처음 들었다. "황금동 콜박스거리"라는 유흥거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그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5·18 당시 공동체를 이뤄 항쟁에 앞장섰다는 것도 말이다. 주먹밥과 물을 함께 나르고 시민군들을 숨겨주고, "내 몸은 더럽지만 내 피는 더럽지 않아!"라며 헌혈에 앞장섰다. 성매매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광주 오월의 서사에 이분들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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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설 수 없는 그녀들의 마음에 공감해
5·18의 숨은 주역인 그녀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하려 했지만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네덜란드처럼 합법화된 나라와는 다르다. 국민들의 성(性)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개방적이고 진보적일 수 없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어도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분들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여성들의 연대는 힘이 세다
민주화운동 당시 황금동 여성들이 저렇게나 강력한 여성군단으로서 힘을 보여줬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민주화를 이뤄낸 광주에서조차 "유흥가에서 일했다"는 편견과 차별이 무서워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5·18의 영역에서도 감춰지는 것들이 존재했다. 어찌 보면 여성지향 성인용품점을 운영하고 계신 대표님이 5·18의 여러 이야기 중에 특히나 황금동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것은 편견과 차별에 대해 "저항"을 스스로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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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구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최하위계층 여성들이 민주주의 투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정황이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믿기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80년 광주는 상식과 통념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별천지였다. 거리의 넝마주이, 구두닦이, 성판매 여성들까지 평범한 시민들과 공평하게 세상의 주인 노릇이 가능했던, 완벽한 대동 세상이었다. 그 중 황금동 여성들은 단연 시민들의 주의를 끌었다. 금남로에서, 충장로에서, 황금동에서, 병원헌혈대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녀들의 강렬한 모습은 시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오마이뉴스 < 5.18 때 피를 나눈 '황금동 여성들'은 왜 잊혔나 > 일부 발췌
기사출처 :https://omn.kr/r9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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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터부시되는 것에서 그치지않은,
연대라는 이름의 차별이 되지않길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최근 44년 만에서야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이 시작되고 있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피해사실 증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 작용한 탓인지 그동안 계속해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성(性)과 관련된 공간에서  5·18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낯설고, 특히나 성폭력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의견을 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학술포럼이나 컨퍼런스에서 교수님 정도 되는 전문가만 이런 주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라서 영원히 질문이 던져지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더 문제라 생각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갖고 함께 의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공감대를 만들다보면 피해자분들도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이다.

소수자의 아픔을 경험한 광주
더 소수자에게 차별을 행하지 않길
지금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광주퀴어축제 당시 5·18 유관단체의 반대요지는 "신성한 역사의 현장인 5·18 민주광장에서 퀴어 행사가 열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신성한"이라는 말도 그렇고 일단은 퀴어축제를 굉장히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프레임이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성별, 몸에 대한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신체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들이 있다 보니 자극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신체를 성적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몸은 그냥 몸일 뿐인데. 개인적으로는 "옷 좀 벗었다고 세상 안 망하는데"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것보단 매일 같이 사용하는 에어컨과 플라스틱 때문에 지구가 먼저 망할 것이다. 연대가 또 다른 차별이 되면 안 된다. 5·18 당시 참여하신 분들 중에도 분명 성소수자분들이 계셨을 것이다. 그분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사셨더라면 분명 똑같이 퀴어축제를 여셨을 거라 생각한다.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퀴어라는 정체성은 그냥 그 존재 자체다. 그 사람이 어떻든 난 그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신성하고", "불결한" 것을 누군가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광주에서 이런 일이 지금 한두 번이 아니다. 금남로에서 물총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그리고 조선대가 5월에 축제를 연다고 했을 때 비슷한 이슈로 논란이 되었다.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여전히 남아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솔직히 그때 길 위에서 싸우신 많은 분들이 이런 걸 원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분들이 원했던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5·18(을 비롯한 사회이슈 전반)에 관심이 없다고 걱정하는데, 그전에 우리가 요즘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갖고 몰두하고 있는지 호기심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서로를 알기 전에는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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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한마디]

"연대가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 시간이었습니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수많은 행동들에 또 다른 차별은 없었는지, 무심코 배제되는 것을 만들지 않았는지, 스스로 편견을 갖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아주 소란한 공론장이었습니다.
더불어 "황금동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께 오마이뉴스 정미경 시민기자님이 쓰신 5.18 때 피를 나눈 '황금동 여성들'은 왜 잊혔나 > 기사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기사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마침)

본 아티클은 현장에서 나눠진 이야기들과 행사 후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남겨주신 소감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6월 5일 수요일 세컨드웨이와 함께한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 김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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