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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자기만의 낭만으로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는 배우 정수린
2024년 6월 3일
광주 충장로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을 하는 정수린 배우
그녀가 충장로를 드나들며 바라본 5·18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학동 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 소개와 청년으로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어떤지를 듣고자 정수린 배우를 만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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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린님: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에서 조선대학교 경영학과를 재학 중이지만 공연예술을 하고 있는 배우 정수린입니다. 현재는 극단 "밝은 밤"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밝은 밤”이라는 극단 소속돼 있으신 걸로 알아요! 혹시 극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수린님: 저희 극단 밝은 밤은 어두운 오늘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품을 통해 밝은 밤을 선물하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또 20대 청년들이 모여 이뤄진 광주 유일 젊은 극단으로 창작 작품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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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조선대 경영학과 재학 중인 학생으로 소개해 주셨는데 어떤 계기로 배우를 하고 싶게 됐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밝은 밤" 극단은 어떻게 들어가게 됐어요?

수린님: 어릴 때 배우를 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반대도 있었고 뭔가 부끄러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마음을 오래 묵혔다가 성인이 되고 ‘나를 위한 도전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곧바로 대학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죠. 때마침 프로로 활동 중인 극단 배우 선배와 또래에 연기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있었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로선 처음에는 소극적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그게 더 좋았어요. 동아리 전체가 연기를 진심으로 임하기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거든요. 특히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저 또한 배우를 진지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래 나 배우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됐어요.

그러다 22년도에 같이 일하는 동료 중 한 명이 극단 “밝은 밤" 소속이었는데 조명 자리 하나가 비어서 해볼 생각이 없냐 묻더라고요. 저는 극단 활동이 배우로서 무엇이든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기에 승낙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뜻이 맞아 현재는 소속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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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사가 그날의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에디터: 공연 포스터들을 둘러보면 공연하는 극장이 충장로 일대인 것 같더라고요. 충장로를 자주 다니면서 5·18 행사를 마주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에게 5·18 행사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수린님: 5·18 참사의 아픔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하셨던 광주시민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날이잖아요. 그날의 아픈 역사를 잊으면 어찌 현재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요. 이 역사가 그날의 희생으로 지금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꼭 이뤄져야하는 행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행사가 때때로 무겁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무겁지만 사건의 진실을 사실적으로 알릴 수 있는 행사와 공연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노력이 결국 희생자분들과도 시민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5·18이란 사건의 진실을 잘 알려주는 의미로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항상 바라보며 생각해요.


에디터: 그럼 광주에서 활동하는 극단 배우라면 한 번은 작품으로 참여하셨을 것 같은데요. 5·18과 관련된 작품에 참여해 보신 적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수린님: 저는 5·18주제로 두 가지 작품인 < 금희의 오월 >,< 버스킹버스 >을 참여했는데요. < 금희의 오월 >은 1980년 5월 27일 끝까지 투쟁했던 故 이정연 열사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에 참여했어요.  5·18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극으로 그날의 역사적 아픔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고요.

< 버스킹버스 >는 광주 시내버스 518번에서 모티브 한 작품으로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전개되고,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이었던 한 남성이 버스에 타면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을 그렸죠. 이 작품은 아픈 역사의 사실적 묘사뿐 아니라 재미적 요소를 많이 넣은 작품이라 5·18역사를 무겁지 않게 잘 풀어낸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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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두 작품 말고도 흥미로운 작품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광주 학동 참사’에 관한 작품을 연기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간단한 소개와 연기를 하시면서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수린님: 학동 참사를 모티브 한 < 덩달아 무너진 세상 >은 올해로 3년째, 6월에 공연되고 있는 추모공연이에요. 매회 각색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항상 같은 모티브를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작품을 올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작년보다 사건 묘사와 더불어 인물들 서사에 힘을 더 실었어요. 희생자분들의 이름을 역할 이름으로 직접 사용했고요. 당시 공사를 맡은 회사의 로고도 직접 사용하면서 참사 현장이었던 주변 건물을 배경으로 무대를 재현하게 됐어요.

이 작품을 준비할 때 항상 생각하는 게 있다면 ”이건 추모공연이다“라고 마음먹어요. 이유라면 스스로 마음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희생자분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작품이니 더욱 마음을 다스리려 하죠. 저는 실제 희생자이신 故김해찬님을 모티브로 해찬 역을 맡았는데요. 극에서 빛나는 밝음이 큰 매력인 해찬을 제가 연기하면서 해찬님에게 감사함을 느꼈어요. 굉장히 특별한 뜻이 있다기 보다 이 역할은 제게 왠지 모르게 무대 위에서 하고 싶은 연기를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마치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정말 제가 31세 故김해찬님이 된 것처럼 집중되면서 그 당시 상황을 겪은 것처럼 연기하게 되고 몸을 움직이게 돼요. 

그래서 이번 6월 7-9일까지 공연을 하니 보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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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밝은밤
에디터: 말씀을 듣고 보니 학동 참사와 5·18 관련 두 작품 모두 ‘사실화'에 적극적인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사실성이 역사를 기억하는 역할도 하는 반면 너무 사실적이라서 개인적으로 저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거나 그래서 관심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수린씨가 생각했을 때 이 가슴 아픈 역사들이 지속적으로 소개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나요?

수린님: 저희 단원들도 거기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요. 요즘 트렌드는 사실적이지만 사실적으로 풀어내지 않는 작품들이 많은데 우리가 사실적으로 해야 되겠느냐. 올드하지 않냐 등등. 하지만 광주 학동 참사도 그렇고 5·18에 대해서도 그렇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에게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들게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온전히 그날의 사건을 잘 전달하고 우리가 그때의 아픔을 공유해야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희 나름대로 사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표현 방식이나 연출의 각색을 통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만 하진 않으려 해요. 이게 어쩌면 저희만의 방법을 고안해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에디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수린님은 적극적으로 이런 역사에 참여하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본인이 생각했을 때 광주 청년, 특히 주위 친구들은 5·18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수린님: 잘 모르겠어요. 제 주위 친구들은 5·18에 대해 이야기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사람들이 무거운 분위기에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안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5·18에 대한 ‘한’이라는 게 각인돼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5·18은 폭동이다.’라는 왜곡적 발언에 인정하는 광주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반응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이 아픔을 홀대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5·18의 한을 가진 채로 각자만의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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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참여하신 또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까 22년 야외 창작 ‘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전에 관객들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토대로 기획, 진행됐다고 보았어요. 그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수린님: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신 나이가 많이 드신 관객분이 기억나요. 야외공연은 오랫동안 앉아있는 관객을 보기 어려운데 거기서 마지막까지 계셨다가 꽃다발과, 커피,  편지까지 써주시고 가셨어요. 야외공연에서는 많은 변수가 생기는 거라 신경을 현장과 공연에 집중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분 덕분에 고생이 싹 가시고, 배우 하기 잘했다 싶었어요. 그리고 그 편지 속 내용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다음 작품에 대사로 그대로 쓰였답니다! 많은 영감이 됐죠.


에디터: 그래서 작품 속 청년들에 이야기들 속에 고민 중 하나인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잘하는 일’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포함돼 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은 연극 배우라는 게 ‘좋아하는 일’에 속해 있는 건가요?

수린님: 당연하죠. 저는 성격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살아갈수 있는 거 같아요. 좋아하는 열정이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을 주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발전하기 위해 늘 연구해요. 그러다보면 점점 잘하고 있음을 느끼고요. 결국 두가지를 얻는 거 아니겠어요? 일석이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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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낭만에 다 젖고 나서
생각하려고 해요"
에디터: 그럼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은 매력적이지만 생계적 어려움(자본주의와 동떨어진 삶)이 항상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수린님: 우선 전 아직 젊고 빛나고요.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전 제가 좋아하는 일, 꿈이라는 걸 빨리 찾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쉽게 찾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수많은 실패와 다양한 경험이 쌓여야만 언젠가 자신에게 알맞은 꿈이란 옷을 입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른이 돼서도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전 빨리 찾은 거죠. 꿈을 꿀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젊은 날에 꿈을 꿀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으니 생계의 문제는 일단 이 낭만에 다 젖고 나서 생각하려고 해요.


에디터: 그럼 낭만에 젖기 전에 지금의 현실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나요? 만약 있다면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없나요?


수린님: 어려움이라기 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도 불안과 좌절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올해 초반에 그런 게 더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1분기까지는 일이 없다 보니까 상황은 여유로운데 활동을 못하니 저도 모르게 불안하더라고요. '즐길 땐 즐기자'라고 되뇌어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우울했었는데 동료가 그러더라고요. ‘불안을 떨쳐내려 노력하지 말고 받아들여, 항상 공존해야 할 감정이니 걔랑 친구 한다고 생각해'라고요. 그때부터 쉽지 않지만 조금씩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역시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어쩔 수 없지 뭐'와 같은 그냥 하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어요.


에디터: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었으면 하나요?

수린님: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만나는 인물마다 잘 소화해서 관객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그런 배우요. 너무 간단해서 좀 그렇지만 정말 말 그대로 연기를 너무 잘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마침)


인터뷰 진행일: 2024년 5월 30일
에디터: 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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