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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RA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클럽에서 틀어지는 "님을 위한 행진곡" 어떻게 생각해?
2024년 6월 3일
지난 5월 22일 구시청의 클럽 심해에서 첫 번째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이 열렸습니다.
심해는 광주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커뮤니티이자 매력적인 언더그라운드 클럽이에요. "일단 심해가 좋아서 한 번 와 본 사람", "클럽에서 무슨 5·18 이야기를 한다는 건지 미심쩍은 사람",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한 사람", "본인이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사람" 등등...이곳에 오게 된 각자의 호기심과 이유는 달랐지만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웃고, 박수치고, 공감하며, 그러나 진지하게 우리만의 공론장을 만들어갔어요.
그날의 이야기, 지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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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튼다구?

5월 17일, 금남로에서 44주년 전야제가 진행되던 날 심해는 "518 RAVE" 라는 이름으로 DJ들이 무대를 꾸몄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그날의 횃불처럼 여전히 밝고 대담하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과 연대"하자는 의미로. DJ들은 "평화"를 주제로 저마다 아껴놓은 곡들을 선보였어요. 심해에서 이런 무대를 기획한 이유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월에 광주에 오게 된 DJ "요일바(요한 일렉트릭 바흐)"님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전자음악으로 믹스한 곡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죠. 

사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감히) 클럽 음악에 사용해도 되는 걸까?" 라고요.  하지만 곧바로 스스로에게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안될 거라고만 생각한 거지?!?" 현장에 계신 분들께도 질문을 던져 봤어요. 어떤 대답들이 나왔을까요?


솔직히 난 못했을 듯...ㅜ
광주사람으로서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전자음악으로 믹싱 해서 클럽에서 최초로 발표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난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아티스트가 쫄지 않고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게 너무 멋지다.

일단 음악 자체가 너무 좋은걸?
무엇이든 지역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를 응원한다. 기존의 틀을 깨는 시도를 하려고 할 때 남의 눈치도 보게 되고 자기 검열도 하게 되지만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할 때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막상 들어보니 음악 자체가 너무 좋다. 아이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고, 그 곡의 힘과 어우러지는 평화의 사운드가 멋지고 감동적으로 들렸다. 전자음악인지, 클럽음악인지 그런 것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 곡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부를 수 있고 재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의도라고 생각해!
내가 어떤 의도로 이 음악을 만들었고 용도를 선택해서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의도"가 결국 중요하다고 본다. 5·18을 알리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면 그 곡을 들을 사람들이 그 의도에 따라서 가치 판단을 할 것이다. 자유로운 재해석의 영역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 의도가 바르지 않은 왜곡과 폄훼 세력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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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년들이 5·18을 사랑하면서도 염증을 느끼는건 왜일까?

해마다 오월이 되면 이어졌던 주입식 교육
광주사람으로서 나 자신에게도 5·18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고, 5·18이 나에게 가르쳐준 다양한 삶의 가치들 그런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질렸다. 그리고 지쳤다. 이건 내 세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동시대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어린 시절 해마다 오월이 되면 이어졌던 주입식 교육이 5·18에 대한 관심을 만들어준 동시에 장벽이 된 것 같다. 묘지에 가서 보았던 잔인한 사진들이 너무 날것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마치 부모님 같달까?(웃음) 멀어지면 그립고 가까워지면 또 멀어지고 싶은...

혐오의 시대를 사는 것 같아ㅜ
단순히 5·18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예시로 재작년의 이태원 참사 때도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지겹다"라는 말을 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아직 해결된 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지겹다며 그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다.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약간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지금 "혐오의 시대"에 산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라면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고 그저 기형적인 편 가르기만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아프기만 해야 할까?
5·18은 수많은 희생자들이 존재하는 역사이지만 계속 희생과 아픔만을 강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래세대에게는 그 아픔을 기억하는 날이자, 앞으로는 그런 아픔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관심 가져야 하는 날이다. 계속 눈물만 흘릴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제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산사람을 위한 행사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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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월정신", "광주정신" 도대체 그게 뭔데?!?

왜 광주청년들에게만 강요해? "서울정신" 들어 봤어? 
사랑과 평과, 인권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주정신"이라서가 아니라 말이다. 유독 광주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광주정신"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청년들이 해석하는 광주정신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중요한 삶의 가치들이다. 그것은 사각형이 될수도 있고 동그라미가 될 수도 있고 뭉게구름 모양이 될 수도 있다. "오월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도시에서 지정하는 이 정신들은 기성세대가 정한 어떤 그림이 있는 것 같다. 그 틀 안에서 정형화되길 원한다. 그러다 보니 5·18 관련 행사들도 매년 비슷한 행사들 뿐이다.

이제는 다양성을 존중해줘!
공공에서 진행되는 "창작지원사업"에 지원해본적이 있는데 사업 계획에 광주정신에 부합하는 내용을 쓰라고 하더라. 개인적으로 퀴어, 성소수자들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된 사업을 썼다. 민주주의의 도시인 광주에서야말로 퀴어 같은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했지만 당연히 떨어졌다. 광주정신에 부합하려면 5·18민중항쟁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걸까? 물론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광주정신에는 다양성이 누락되어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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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테크노의 정신을 P.L.U.R이라고 말해요. P는 피스(Peace), L은 러브(Love), U는 유니피케이션(Unification), R은 리스펙트(Respect)의 알파벳 앞글자를 딴 것이죠.  테크노는 단순히 음악 장르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입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이후 자유와 평화를 함께 외치며 분단된 사회의 통합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죠. 이번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어요. "5·18"과 "클럽" 이 두 가지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연결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테크노의 정신과 오월정신이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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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조금 눈치 없는척 하자! 
그리고 서로를 응원하자.

우리 가끔은 조금 눈치 없는척 뭐든 해보자
광주 청년들이 5·18에 대한 왜곡, 비하, 폄훼 같은 공격들에 민감하다 보니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 80년 오월을 겪지는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5·18의 참상을 바라보고 듣고, 배우며 자라온 광주의 청년세대다. 비경험세대라고 해서 5·18을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생각하다가 입을 다무는 것보다는 조금 눈치 없는 척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클럽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틀어도 될까?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는 거다. 최근 불교행사에서 뉴진스님이 "극락도 락이다!"며 불교 교리를 EDM으로 편곡해 선보이고 "힙한 불교"를 알리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공식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뭐라도 해보자.    

오월에 대한 경험을 확장하고 서로 응원한다면
역사교육도 중요하고 이론, 지식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지금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5·18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체험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5·18이 나의 삶에 연결되는 어떤 감각들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촛불 시위 때도 느꼈지만 역사 속에서 어떤 계기들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바뀌는 일이 한순간에 진행되기도 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5·18에 관심을 갖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런 "계기"들이 더 많이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5·18은 나와는 관련이 없어"라는 편견이 깨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계기"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난보다는 서로를 응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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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한마디]

이 날 공론장에는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청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신 선배님들도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꺼내신 분은 5·18 기념재단의 관계자분이셨습니다. "23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저는 사실 한소리 하실 줄 알았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3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5·18 행사로 평화 마라톤을 하자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 난리가 났었습니다. 무슨 마라톤이냐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낼모레 5·18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여러분들 뭐든 다 하세요."  그 순간 갑자기, '그래 광주는 이런 도시였지'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마침)

지난 5월 22일 수요일 심해와 함께한 
<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디터 : 김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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