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대학 재학 시절, 5월에 타 지역 대학생들과 광주에 모여 5·18 사적지를 함께 돌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우 더운 5월이었지만 대학생들의 그 불타는 열정으로 타 지역 학생들과 함께 5·18 사적지의 시작인 전남대 정문부터 전남대 정문, 구 터미널, 광주역 광장, 금남로, 도청까지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대전과 대구 경북 지역 학생들은 5·18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함께 공부하며 뜨겁게 불타 올랐던, 그 더운 5월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E : 소풍 때마다 갔던 5·18국립묘지와 그 곳에서 보았던 희생자들의 처참한 주검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돌아보면 분별력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따분한 소풍의 강렬한 "구경거리"였겠다 싶어서 서글퍼지네요.
F : 초등학교 때 상무지구에 있는 5·18기념문화센터 야외에서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그 부근에 지하로 연결되는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너무 날 것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깜짝 놀라서 나왔어요. 들어가는 공간도 너무 춥고 섬뜩하더라고요.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5·18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장면이 생각나서 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꾸 잔상처럼 남아서 역사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주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제주의 4.3은 광주랑은 분위기가 달랐어요. 뭐랄까,,, 조용하지만 강한 연대가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학 동기들, 특히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4.3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지", "우리가 당연히 이걸 알고 있어야지" 이런 태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광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5·18이 이렇게 피로하고, 무겁고 힘들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5·18에 대해서 조금씩 공부하고 알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직까지 친해지진 못했지만요.
G : 동구 동명동에 정말 오래동안 살았는데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길때 "지상이면 안된다", "이 민주광장이 어떤 곳인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5·18에 대한 기억과 관심이 뚜렷해졌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