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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올이 물어 봤습니다
5·18하면 딱! 떠오르는 
나만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2024년 7월 29일

웹진을 제작하면서 청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한 가지 재밌는 경향성을 발견했습니다. 광주 청년들은요, 5·18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경우 "잘 모르고, 관심 없고, 할 말도 없는데ㅠ"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꼬치꼬치 물어보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듯 할 말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다들 1가지 정도는 5·18과 관련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소풍으로 갔던 비엔날레, 견학으로 갔던 민주묘지 등 어릴 때부터 자의든 타의든 광주의 오월을 마주칠 일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여러분은 5·18하면 딱! 떠오르는 나만의 기억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떤 기억인가요?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오월의 이야기를 좀 더 친숙한 기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들이 필요할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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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와 관련된 기억

A : 저는 학창 시절 영화 < 화려한 휴가 >가 개봉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해도 외출 허가를 잘 안 내주시던 무서운 학생부장 선생님이 < 화려한 휴가 >를 보러갈 사람들은 외출 허가를 해줄테니 다녀오라고 하셨거든요. 지금도 그 영화를 볼 때면 왠지 스토리보다 이 영화는 보러 갔다와도 된다며 선생님들이 허락해주신 그날 일들이 더 뭉클하게 기억이 나요.

B : 다큐멘터리 영화 < 손, 기억, 모자이크 , Hand, Remember, Mosaic(2019) >를 광주독립영화제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 깊었어요. 연출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데요. 광주전남에서 시행되고 있는 5·18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받았던 5·18 교육, 폭력적인 이미지에 무방비하게 노출이 되어서 사회문제를 외면하게 되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던 감독의 이야기예요.

C : 혹시 < 꽃잎 >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영화를 틀어주는 행사에서 스텝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의 준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그 영화를 보았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만들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정말 사실이 맞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이후로 5·18과 관련된 영화를 안 봐요. 너무 끔찍했거든요. 남들이 다 본 < 1987 >,  < 택시운전사 >, < 서울의 봄 > 도 볼 용기를 아직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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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합적인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

D : 대학 재학 시절, 5월에 타 지역 대학생들과 광주에 모여 5·18 사적지를 함께 돌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우 더운 5월이었지만 대학생들의 그 불타는 열정으로 타 지역 학생들과 함께 5·18 사적지의 시작인 전남대 정문부터 전남대 정문, 구 터미널, 광주역 광장, 금남로, 도청까지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대전과 대구 경북 지역 학생들은 5·18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함께 공부하며 뜨겁게 불타 올랐던, 그 더운 5월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E : 소풍 때마다 갔던 5·18국립묘지와 그 곳에서 보았던 희생자들의 처참한 주검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돌아보면 분별력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따분한 소풍의 강렬한 "구경거리"였겠다 싶어서 서글퍼지네요. 

F : 초등학교 때 상무지구에 있는 5·18기념문화센터 야외에서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그 부근에 지하로 연결되는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너무 날 것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깜짝 놀라서 나왔어요. 들어가는 공간도 너무 춥고 섬뜩하더라고요.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5·18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장면이 생각나서 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꾸 잔상처럼 남아서 역사 시간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주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제주의 4.3은 광주랑은 분위기가 달랐어요. 뭐랄까,,, 조용하지만 강한 연대가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학 동기들, 특히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4.3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지", "우리가 당연히 이걸 알고 있어야지" 이런 태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광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5·18이 이렇게 피로하고, 무겁고 힘들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5·18에 대해서 조금씩 공부하고 알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직까지 친해지진 못했지만요.

G : 동구 동명동에 정말 오래동안 살았는데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길때 "지상이면 안된다", "이 민주광장이 어떤 곳인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5·18에 대한 기억과 관심이 뚜렷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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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에 대한 기억

H :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다리에 흉터를 보여주면서 5·18에 대한 기억을 깨우쳤던 것 같아요. "여기 총알이 박혀있어", "광주에서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있어" 등등 너무 어릴 때부터 듣고 자라 온 것 같아요. 제가 말을 했을 때부터요.

I : 지인 중에 당시 고등학생이셨던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그 분의 생생한 증언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과 마음이 생긴 계기가 되었어요.

J : 17살, 엄마에게서 처음으로 들었던 오월 광주의 이야기가 생각나요. 엄마는 그 시절의 이야기 하는 걸 정말 꺼려했는데 낙인 때문인 거 같았어요.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꺼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날은 덤덤히 하시더군요. 엄마가 딱 내 나이였을 때 항쟁이 벌어졌으며, 병원 앞에 피가 낭자해서 무서워서 집에 들어갔대요. 고향인 보성에서 유학 와 같이 살던 오빠(나의 작은 외삼촌)가 들어오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소식을 들으니 시위 버스 위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혼자서 너무 무서웠는데 나중엔 집주인 아주머니랑 솜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으셨대요. 그 위로 비처럼 떨어지던 총알 소리들이 선명하다고 하셨어요. (다행히 삼촌은 무사하셨어요!)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외할아버지는 없는 살림에 어찌어찌 화순까지는 오셨는데 광주로 가는 나들목에서 더 막혀 갈 수가 없었고(광주로 가는 모든 길목을 군이 차단했겠지요.) 산을 넘어 광주로 들어오셨다고 해요.

K : 서울에서 살다가 20살 때 학업으로 광주를 처음 오게 되었어요. 중간고사가 끝난 5월, 전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동기들과 치맥을 먹고 있는데 선배님들이 5월인데 학교에서 무슨 술을 마시냐며 뭐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선배에게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동기에게 물어보니 광주는 5월에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다며 설명해주었고, 저는 그때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전까지 구호로 외치던 "민족전대!!"의 이유도 이때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20살 5월, 저에겐 중간고사 끝나고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시간이었지만, 같은 20살 5월 누군가에게는 투쟁의 시기였다는 생각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숙연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더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 가치를 느끼며 광주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이제는 광주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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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간에 대한 기억
L : 청소년들의 축제인 < 레드 페스타 >가 금남로에서 열렸던 것이 떠오릅니다. 평소에는 차가 쌩쌩 달리는 거리를 막고 자유롭게 넘나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M: 5월이 되면 도로가 자주 통제되고 버스가 우회하던 금남로와 민주광장 주변의 모습이 생각나요. 요즘은 광장이 정비돼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오월 하면 지금도 "통제된 금남로"가 상징적으로 떠오르네요.

N : 지금은 사라진 (구)광주여고의 전층을 무대로 했던 < 원데이 메이비 언젠가 > 라는 공연과 함께 그 공간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공연으로 진행되었던 작품인데 장소특정형 연극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은 전당의 부설주차장이 된 자리에 옛 광주여고가 있었는데 그 장소에 가면 아직도 80년 5월의 시민들이 함께 걸어다니던 그 공연이 생각납니다. 


O : 광주비엔날레의 40주년 특별기획으로 진행되었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의 전시가 기억에 남아요. 뭔가 지금도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공간에 들어가니 80년 5월의 공기가 느껴지는 느낌이었죠. 무채색의 국군광주병원 건물에 생화로 연출한 꽃길이 인상 깊었습니다. 5·18의 이야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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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밖에
P : 광주 사람이 아니어서 5·18에 대한 깊은 이해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강 작가님이 쓰신 < 소년이 온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그 기억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Q: 양동시장과 대인시장 등 시장의 상인들이 80년 5월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전달하며 나눔을 실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뒤로 왠지 양동시장이나 대인시장에 가면 그 곳 상인분들이 (아무도 모르지만) 친근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야기를 알고 모르고의 영향이 참 큰 것 같아요. 

R : 올해 5월 18일에 광주의 모든 대중교통들을 무료로 탈 수가 있었어요. 광주가 5월 18일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깜짝 혜택을 준비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S : 아무래도 5·18이 가장 강렬한 기억 그 자체이겠지요. 부모님 세대가 겪었고, 그들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면 "잊지 못할 기억"이라는 게 있을 듯해요. 그렇지 않은 20대 청년으로서 딱히 교육받은 적도 관련 경험한 적도 없어서(있어도 매우 경미) 그런 게 있을 리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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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보니 또 다른 기억이 다들 떠오르셨나요?😊언제든지 여기를 클릭해서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모두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마침)
설문 및 인터뷰 진행기간 : 7월 5일 ~ 7월 25일

본 콘텐츠는 < 5·18과 연관된 가장 강렬한 기억이 있다면?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설문의 응답 내용 및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해 작성되었습니다.
에디터 :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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