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봐도 될까. 광주 사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오월 세포’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광주에서 태어나서 자랐건 아니건 간에(가장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오월 세포를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광주의 오월과 5·18에 관하여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한편 이 도시에서 살았고, 살아갈 예정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월 세포가 없다면 그저 한국사의 중요한 사건 정도로 파악하고 있을 거다. 거친 비유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 또한 오월 세포를 갖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나의 말을 했다는 것
지난 5월, ‘연대’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패널로 초대받았다. 우리에게 오월은 무슨 의미인지, 광주의 연대는 잘 되고 있는지, ‘혁신적 연대’라는 건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사실 행사가 진행될수록 묘하게 짜증이 났다.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랬다는 게 아니라 ‘너무’ 의미 있는 말들, ‘너무’ 중요한 이슈들,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정신 같은 것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너무’ 알겠으나 ‘절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강조 표시로 도배된 수험서를 펼쳐둔 기분이었달까. 세미나 내내 공감의 제스처를 취하며 잠자코 앉아 있다가, 마지막쯤 내가 말할 차례가 되자 두서없이 날 선 말들을 해버렸다. “우리가 혁신적 연대를 논하기 전에, 돌봄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느끼기엔 광주는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도시거든요. 일상에서 무엇을 돌보고 계시나요. 연대 이전에 각자의 삶 속에서 하는 돌봄과 작은 연결부터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끝내니 화끈거리는 얼굴이 느껴졌다. ‘나 지금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옅은 수치심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 그곳에 계신 분들 모두 “용기 있는 발언 멋졌다”라며 긍정적으로 들어주셨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나는 종종 내가 했던 말이 어디서 나온 걸까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내가 ‘나의 말을 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복기를 하게 된 거다.
오월 세포가 부디 나타나 주길
그러던 중 에메올 웹진팀에게 “저번에 말씀하신 돌봄 없는 연대를 주제로 한 글을 써주시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구나, 돌봄 없는 연대라니 꽤 그럴싸한데 싶어 호기롭게 승낙했다. 하지만 나에겐 오월 세포가 없다. 꺼내 쓸 기억이나 역사도 없다.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친척 중에 오월 세포를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여쭤보면 뭔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돌아오는 대답 모두 성에 안 찼다. 장흥 할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광주 가는 트럭에 실었다는 엄마의 목격담, 도청 근무 당시 들었던 몇 가지 이야기 정도였다. 이 정도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소스가 부족했다. 며칠간 있지도 않은 세포 탓을 했다. 어떤 세포라도 말을 걸어주길 바랐다.
어쩌면 ‘오월 세포’를 갖고 있다거나 없다고 구분했던 건 나 또한 ‘채택될 만한’ 오월 서사가 있기를 바라면서 기인한 마음일 것이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으면 응당 80년 5월과 맥이 닿은 뿌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 왔던 탓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으므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도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오월 세포’가 발견되기를, “나 몰랐는데, 할아버지가 국가 유공자셨어.”라거나, 집안의 정체성이 될 만한 운동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했다. 오월을 이야기하며 늘 죄책감, 부끄러움, 무지를 꾸짖는 목소리에 눌려왔다. 가족이든 뭐든 좋으니, 나에게도 뚜렷한 실체(언어)를 가진 이야기가 있기를 염원했다. 매년 오월이 돌아와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는 말을 못 하겠기에 세포가 있느니 없느니, 오월 서사는 갖고 태어나야 하는 거라는 계급적이고 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기억과 서사, 말하기와 듣기에 관하여
김애령 교수의 책 『듣기의 윤리』에 일본 학자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를 설명한 대목이 있다. “오카 마리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은 서사 텍스트에 담기지 못하는 잉여의 부분을 지닌다. 사건은 늘 언어의 표현 가능성을 넘어선다. 사건은 언어화되기 이전에 있었고, 서사 너머에 그 자체로 있다.” 글쓴이는 덧붙인다. “사실, 언어는 경험을 묘사하기에 부족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어떤 경험들은 언어화 자체를 거부한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것,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 말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늘 부족하다. 더욱이 언어는 사건의 생생함과 치열함을 일정한 틀 안에 고정시킨다. ‘채택된’ 서사는 조작적이고 구성적이다. (중략) 오카 마리는 말과 경험, 언어와 사건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을 비판적으로 직시한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게 있다. ‘할 수 있는 말만 할 것.’ 당연한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지키기 어렵다. 나에게는 윤리나 책임의 문제라기보다는 진실성의 문제다. 안에 없는 말은 하지 말자, 잘 모른다고 주저하지 말자, 치장하지 말자, 흉내 내지 말자, 나의 말을 하자. 방금 인용한 부분을 읽고 나서 나의 말과 글, 엄마와 할머니에게 들은 경험(사건)을 다시 생각한다. 언어가 비껴간, 오지 않은, 흩어진, 불충분한, 필요 없는 곳에 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가공된 언어는 언제나 진짜보다 못하다. 엄마와 할머니의 경험은 그 자체로 ‘들어야 한다.’ 이게 ‘오월적으로’ 말할 거리가 되는지 아닌지, 내용이 유의미한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판단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영문 모를 큰 트럭이 시골길을 따라 들어오던 장면, 십시일반 주먹밥을 만들어 실어 날리던 손과 발을, 그들이 걷어붙인 소맷자락을 살피며 집에 갔을 중학생 엄마를 상상해 본다. 동시에 또다시 말이 우선하는 바람에 실패할 뻔한 나의 글쓰기를 되잡아 본다. 정돈되지 못한 채 울컥 쏟아졌던 지난 5월의 말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만 쓴다’라고 다짐하면서.
오월 세포는 없어, 이야기만 있을 뿐
글을 쓰는 와중에도 ‘불안 세포’가 바락바락 소리친다. 나의 세포들 중에 단연 활발하게 활동하는 놈이다. 오월에 대한 불순함을, 5·18 경험 세대가 비경험 세대에게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꼰대 같은 언행을, 이 도시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5·18 정신 모르면 나가라.’ 분위기를 모르느냐며, 원래 하던 대로 불안해하라고 부추긴다. ‘의심 세포’도 거든다. 지난 전야제 때 거리에 모인 시민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풀이 만신과 풍물단을 의심하라고 속삭인다. 매년 하는데도 매년 저리 슬플까, 저리 감동적일까 의아하지 않았냐고, 영혼까지 갈았지만 열정 페이로 일한 사람도 있었을 거라며 쉽게 동요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너도 말하라, 너의 말을 하라
< 유미의 세포들 >에는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대사가 있다.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오월 세포는 없어, 이야기만 있을 뿐.” 나와 비슷하게 자신은 오월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우연히 운명적인 서사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거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파울 첼란의 시 한 문단을 건네주고 싶다. 이 시는 앞서 언급한 『듣기의 윤리』에 실려 있었고, 아마 앞으로 내가 오월에 관해 말하거나 쓸 때 많이 기대게 될 것 같다.
“너도 말하라, 가장 마지막 사람으로서 말하라, 너의 말(Spruch)을 하라. 말하라
– 그러나 아니다를 그렇다와 가르지 마라. 너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라 : 그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라.”